베트남 전시 서한의 인문적 가치

(VOVWORLD) - 펠루어 (Pelure)라는 방습용지에 급하게 써내려 간 편지는 베트남 전쟁 중에 수백만 호의 베트남 가족에 있어서 익숙한 이미지였다. 그러한 편지를 통해 전사와 가족들의 마음과 정감, 그리고 혁명 이상이 소박하고 생생하게 담겨 있었다. 편지에 가득한 정감뿐만 아니라 전선에 나가 있는 전사들의 강한 의지가 넘쳐 났다. 특히 혁명 유공자를 기리는 7월이 되면 그러한 편지는 읽는 사람들에게 더욱 특별한 느낌을 전달한다.                                  

1968년 1월 20일.. 남부..

경애하는 부모님, 사랑하는 우리 동생들,

고향과 부모님을 떠났을 때 저는 아직 16세가 되지 않았는데, 지금은 전쟁 포화와 포연 속에 성장하였습니다. 파괴된 고향의 원한을 안고 전쟁지에 들어온 저는 아무리 힘들어도 희생을 각오하고 있으며, 모든 힘을 내어 극복하겠습니다. 우리 가족의 편지를 항상 기다립니다. 편지 한 장 한 장이 제가 계속 살아있는 한 전투에 힘을 보태줄 것입니다. 조국이 통일된 후 부모님을 다시 찾아 뵙겠습니다.

이 글은 전장에서 희생되기 전 르엉 남 띠엔 (Lương Nam Tiến) 열사가 부모님에게 써 보낸 편지이다. 이 편지의 내용은 베트남 인민군 대령 당 브엉 흥 (Đặng Vương Hưng) 작가가 편집한 ‘베트남 전시 서한”이라는 시리즈 작품에 실려 독자에게 소개되었다. 모든 편지들은 전투 사이 쉬는 시간이나 전투가 시작되기 전에 전사들이 마음 속의 말을 꺼내어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들에게 쓴 것이다. 당 브엉 흥 (Đặng Vương Hưng)  대령은 다음과 같이 밝혔다.          

베트남 전시 서한의 인문적 가치 - ảnh 1베트남 인민군 대령 당 브엉 흥 (Đặng Vương Hưng) [사진: nhandan.vn] 

"당시 편지는 현재와는 많이 달랐습니다. 베트남 전쟁 경제적 조건이 매우 어려웠기 때문에 종이 종류도 다양하고 때로는 만년필로 쓰고 때로는 볼펜으로 썼습니다. 연락 방식은 대부분 편지였습니다. 후방에서 전선으로 보낸 편지는 우선 개인적인 정감을 주고받는 방식이었습니다. 지금 편지는 개인적 이야기라서 숨어서 봐야 되는데 당시 공통적인 것이라서 전쟁지에 있는 전사의 편지를 받으면 마을 동네 사람들이 모여서 같이 읽었습니다. 또한 전쟁지에서 아내나 애인의 편지를 받게 되면 소대 전사들이 함께 읽었습니다."

 전장에서 보낸 편지는 대부분 전투상황을 자세히 묘사하였다. 때로는 적군을 방어하거나 때로는 적군 탱크를 맞서 싸운 이야기였다. 비밀 지하로에서 생존한 기간, 동지 동무가 희생한 순간, 전쟁에서 공산당원으로 인정된 순간 등이었다. 삶과 죽음을 사이에 두고 치열한 전장에서 밤낮 없이 전투해야 되었던 사람들의 글이 생동있게 묘사되었다. 당 브엉 흥 (Đặng Vương Hưng) 대령은 다음과 같이 평가하였다.  

"그러한 편지들은 개인적인 편지일 뿐만 아니라 소식 전달, 심지어 신문과 같은 것이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편지 안에 전장 이야기나 후방 촌막의 이야기가 담겨 있었기 때문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6개월이나 1 2 후에야 편지를 받게 되었을 고향집에 있는 가족은 전장에서 있는 보낸 사람이 여전히 건강하다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편지는 인간에게 치열하고 힘든 전쟁 속에서 기쁨을 느끼게 되고 임무를 완성할 있게 정신적인 지주가 되어 주었습니다."

베트남 전시 서한의 인문적 가치 - ảnh 2베트남 인민군 대령 당 브엉 흥 작가가 편집한 ‘베트남 전시 서한”이라는 시리즈
[사진: laodongxahoi.net]

부모님, 남편, 아내, 연인 등에 쓰고 보낸 편지는 개인적 감성만이 아니라 고향과 조국을 향한 심정과 임무에 대한 책임성을 반영하기도 하였다. 무엇보다도 그리움 속에서 쓰여진 이러한 편지는 한 세대의 베트남 군인들에게 있어서 살아가는 이상이 되었다. 전쟁이 끝난 지 한참이 지났지만 레 티 낌 중 (Lê Thị Kim Dung) 할머니는 50년 전에 그녀의 연인 팜 쑤언 싱 (Phạm Xuân Sinh) 전사가 써 준 편지의 내용을 여전히 기억하고 있다.  레 티 낌 중 (Lê Thị Kim Dung) 할머니는 다음과 같이 나눴다.

"당시 편지 장이라도 받으면 정말 기쁘게 생각했습니다. 왜내하면 전장에서 보낸 편지는 보통 3 – 4 개월 후에야 받을 있었기 때문입니다. 편지를 읽으면서 우리 사랑하는 사람이 여전히 안전하다는 것을 알고 너무 기뻤습니다. 그리고 연인에게 편지를 쓰면서 조국과 혁명 이상을 위해 전투에 나간 것을 항상 지지한다고 말했습니다."

전시에 주고 받은 편지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있는 감성을 뚜렷하게 표현하였다. 여기에는 승리에 대한 믿음과 그리움, 사랑과 쓸쓸함 등이 담겨 있다. 세월이 몇 십 년 지나면서 편지 종이가 노랗게 변색되었지만 그러한 서한의 인문적 가치가 여전히 그대로이다. 글쓴이가 대부분 별세하였으며, 그중 많은 자가 열사가 되었다. 때문에 그들이 쓴 편지는 살아 있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귀중한 유물일 뿐만 아니라 베트남 민족의 웅장한 역사시기를 기록한 유산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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