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엣박 지역 주민들 기억 속의 역사적인 8월 날들
(VOVWORLD) - 1945년 8월 까오방(Cao Bằng)성, 박깐(Bắc Kạn)성, 랑선(Lạng Sơn)성, 하장(Hà Giang)성, 뚜옌꽝(Tuyên Quang)성과 타이응우옌(Thái Nguyên)성을 포함한 비엣박(Việt Bắc) 근거지는 독립과 자유를 위한 전국적 봉기의 발단이 되었다. 올해 9월 2일 베트남 독립기념일에는 78년 전 역사적인 가을 날들의 기억이 이곳 주민들의 마음에 다시 떠올랐다.
전국 정권 쟁취 총봉기를 결정하기 위한 국민대회가 1945년 8월 16일부터 17일까지 열린 떤짜오 서낭당 |
그해 8월 가을 황 응옥(Hoàng Ngọc) 할아버지는 겨우 9살이었다. 그가 거주하는 뚜옌꽝성 선즈엉(Sơn Dương)현 떤짜오(Tân Trào)면 낌롱(Kim Long) 마을은 전국 정권 쟁취 총봉기를 결정하기 위한 국민대회가 1945년 8월 16일부터 17일까지 열린 곳이었다. 구국아동대원으로서 그날 황 응옥 소년은 낌롱 마을 주민들과 함께 대회를 환영하면서 떤짜오 반얀 나무 아래에서 봉기군의 출동식을 목격했다. 그해 총봉기 날에 대한 기억은 황 응옥 할아버지의 기억에 여전히 남아 있다.
“대회를 축하하러 나갔을 때 호 아저씨는 혁명을 위한 저희 낌롱 마을 사람들의 지원에 감사하셨습니다. 저와 같은 당시 아이들이 선두에 서는 것을 보셨습니다. 그 당시 형편이 매우 힘들었기 때문에 저희는 말랐고 누더기 옷만 입었습니다. 호 아저씨는 저를 포함한 두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으셨습니다. 그리고 호 아저씨는 대회 참여자들에게 이 아이들이 잘 입고 먹고 공부를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날 오후 이 반얀 나무 아래에 줄을 서서 진군가(進軍歌)를 부른 후 보 응우옌 잡(Võ Nguyên Giáp) 아저씨는 1호 군령을 낭독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그는 선서한 자리에 섰고 사람들은 모두 구호를 외쳤으며 그 외침 소리가 산림으로 울려 퍼졌습니다. 3발의 신호탄을 발사한 후 군단은 타이응우옌성 관청으로 향했습니다.”
(Sơn Dương)현 떤짜오(Tân Trào)면 낌롱(Kim Long) 마을 내 거주 황 응옥 할아버지 |
올해 97세인 농 비엣 또아이(Nông Viết Toại) 문학가는 그의 고향 박깐성 응언선(Ngân Sơn)현 사람들이 정권을 쟁취하기 위해 봉기를 일으킨 날의 기세를 회상할 때 여전히 설레고 감동을 느낀다. 그와 응언선 사람들은 까오방성 쪽에서 오는 군단들이 진입해 쩌라(Chợ Rã)와, 쩌돈(Chợ Đồn), 푸통(Phủ Thông)지역과 평야 지역의 관청을 해방시키는 것을 처음으로 보았다. 8 월 20 일부터 22 일까지 박깐성 인민과 봉기군이 도시로 몰려와 관청을 점령하고 일본군의 식민정권과 탄압 박탈 기관을 해체한다고 발표했다. 8월 23일에 박깐성은 완전히 해방되었다. 농 비엣 또아이 작가는 여전히 그의 고향인 응언선 현을 포함한 모든 마을 사람들의 집회 분위기를 어제처럼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그 당시 저는 박깐성 응언선현 항일 선전대의 간부였으며 선전 노래를 담당했습니다. 형님들은 저희에게 일본 파시즘의 해체에 대한 5줄, 10줄만의 짧은 노래를 가르쳐 주었습니다. '우리 동포들이 합심해 함께 희생하고, 함께 나아가고, 깃발 아래로 빨리 걸어가자'… 대략 그런 노래였습니다.”
농 비엣 또아이(Nông Viết Toại) 문학가 |
혁명의 요람지인 비엣박은 정치· 군사에 대한 전략적 위치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프랑스군과 일본군 모두 통치 시스템 구축에 중점을 두었다. 수년 동안 식민주의와 제국주의 그리고 지주들의 간혹한 지배 하에 혁명 운동은 항상 이곳 동포들의 열렬한 지지로 끓어올랐다. 농 비엣 또아이 작가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했다.
“그 당시 저희 집은 매우 어려웠지만 기꺼이 기부할 준비가 되어 있었습니다. 기부는 강요하지 않았지만 모두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했습니다. 봉기군이 알려주기만 하면 오후에 바로 기부할 수 있었습니다. 쌀과 옥수수 또는 옷과 신발 등을 기부했습니다. 넉넉한 집은 4개나5개의 쌀 포대를 기부하고 어려운 집도 반 포대를 주거나 옥수수로 기부했습니다. 그렇게 혁명적인 분위기였습니다. 매우 솔직하고 자연스러웠습니다.”
보 쫑 꼰(Võ Trọng Côn) 할아버지 |
8월 14일부터 25일까지 비엣민(Việt Minh) 전선의 지도 하에 비엣박 지역 소수민족 사람들의 한 마음으로 뚜옌꽝성, 타이응우옌성, 박깐성, 까오방성에서 모든 사람들이 일제히 일어나 봉기를 일으켰다. 그들은 한결같이 봉기를 일으켜 지방정부를 쟁취했다. 수천 년의 봉건시대와 거의 80 년 식민지 시대를 거쳐 베트남 사람들은 실제로 나라의 주인이 되었다. 까오방성 까오방시 헙장(Hợp Giang)동에 사는 87세 보 쫑 꼰(Võ Trọng Côn) 할아버지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8월 혁명의 날은 매우 소중한 날이었습니다. 노인부터 젊은이까지 모두 새 옷을 입는 것처럼 매우 흥분되었습니다. 혁명이 성공한 날부터 우리나라는 독립했고 전국민 특히 까오방성 사람들은 자유와 독립된 나라에 살게 되고 당과 호 아저씨의 리더십을 점점 더 신뢰했습니다. 저희는 독립적인 베트남 나라를 탄생시킨 베트남 민족 영웅인 호 아저씨의 은혜를 항상 기억합니다.”
새롭고 현대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오늘날 비엣박 |
78년이 지난 후 오늘날 비엣박은 새롭고 현대적인 면모를 갖추었다. 주민들의 생활도 날이 갈수록 좋아지고 있다. 생전 호찌민 주석은 혁명이 비엣박 덕분에 성공했으며 항쟁도 비엣박의 지지로 승리할 거라고 말했다. 비엣박 지역의 각 소수민족 공동체는 8월 혁명의 성공과 장기적인 민족 항쟁의 승리에 적지 않은 기여를 한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