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 응우옌 잡 (Võ Nguyên Giáp) – 민심(民心)의 대장

(VOVWORLD) - 보 응우옌 잡 대장은 친근한 인격과 소박한 생활로1941년부터 1944년까지 항전 기지와 인력 구축을 맡았던 기간 동안 까오방 (Cao Bằng)성 화안 (Hòa An),  응우옌빙 (Nguyên Bình) 지역 주민들에게 특별한 감정과 인상을 남겼다. 오늘날까지 응우옌 빙현 땀낌(Tam Kim), 흥다오(Hưng Đạo), 화탐 (Hoa Thám), 민떰(Minh Tâm) 지역 주민들의 마음 속에 잡 대장은 영원한 민심의 대장이자 현지 역사의 일부분이다.

보 응우옌 잡 (Võ Nguyên Giáp) – 민심(民心)의 대장 - ảnh 1 고향 방문 중 보 응우옌 잡 대장을 환영하는 꽝빈 (Quảng Bình)성 레튀(Lệ Thủy)현 간부와 주민들 [사진 출처: Tr.T/ baoquangbinh.vn]

응우옌빙현 즈엉 반 선 (Dương Văn Sơn) 전 서기는 본인 가족의 아버지와 어머니, 큰아버지들 모두가 “반 (Văn) 큰아버지” (잡대장을 친근하게 부르는 이름)와 가장 힘든 시간을 함께했던 어른들이라면서, 자랑스럽고 감동적인 말투로 다음과 같이 밝혔다.

저희 아버지 말씀에 따르면 반 큰아버지는 이곳에서 주민들과 함께 먹고, 또 입는 옷도 현지 사람들과 똑같았으며, 심지어 따이 (Tày)족 언어도 배우셨습니다. 반 큰아버지는 여기 주민들을 매우 사랑하고 올바른 사람들이라고 여겼던 만큼 큰 신뢰를 받았으며, 어떤 말을 해도 주민들이 따랐습니다. 지금까지도 현지인들은 잡 대장을 잡 큰아버지, 반 큰아버지라고 친근하게 부르고 있습니다.

하꽝(Hà Quảng), 화안(Hòa An), 응우옌빙 (Nguyên Bình)에서 까오방(Cao Bằng) – 박깐 (Bắc Kạn)–랑선(Lạng Sơn)까지를 순회하는 4년 동안 이곳 산맥과 마을의 모든 곳에 대장의 발자취가 남아 있다. 젠신(Dền Sinh), 딱핫(Tác Hát)산맥에서 카우랑(Khau Lảng), 카우장(Khau Dáng), 피어븟(Phia Vựt), 슬람까오(Slam Cao) 정상에 이르기까지 모두 “반 큰아버지”에 대한 기억들이 가득하다. 대장은 따이(Tày), 눙(Nùng), 자오도 (Dao đỏ), 자오 띠엔(Dao Tiền)족 언어와 풍습을 능숙하게 독학하여 현지인들과 함께 살고 먹고 혁명 활동을 할 수 있었다. 아마도 이것이 사람들이 대장을 가장 사랑하고 존경스러워 하는 점일 것이다. 땀낌(Tam Kim)읍 주민 농 딘 찌엔 (Nông Đình Chiến)씨는 혁명이 성공한 후 대장이 까오방 (Cao Bằng)에 다시 찾았을 때 “반 큰아버지”를 직접 만날 기회가 있었다며, 다음과 같이 밝혔다.

잡 대장에 대해서는 멀리 갔다가 가족에게 돌아오는 듯한 친근한 느낌이 가장 인상이 깊었습니다. 땀낌 주민과 간부들은 큰아버지가 모든 인민의 대장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여기에서 새로운 길이나 새로운 학교가 만들어지면 주민들은 모두 잡 큰아버지 길, 잡 큰아버지 학교라고 부릅니다. 대장이 없으면 이렇게 길도 학교도 없었을 겁니다. 명절 때나 12월 22일 , 또는 대장 제사일이면 주민들은 항상 쩐 흥 다오 (Trần Hưng Đạo)숲에 있는 제사상에 가서 분향합니다.”

1994년 까오방(Cao Bằng)을 마지막으로 찾은 잡대장은 이 지역 주민들에게 까오방에 오는 것은 두 번째 고향과 집으로 가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다시 강조했다. 이러한  마음에 보답하기 위해 응우옌 빙(Nguyên Bình)을 비롯하여 혁명의 고향 까오방 (Cao Bằng) 의 낀(Kinh) 족, 따이(Tày)족, 눙 (Nùng)족, 몽(Mông)족, 자오도 (Dao đỏ), 자오띠엔 (Dao tiền) 등 소수민족 사람들은 모두 잡대장을 본인 고향, 본인 민족의 한 구성원으로 여긴다. 사람들은 모두 대장을 “반 큰아버지” – 민심의 대장이라는 친근하고도 사랑스러운 이름으로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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